2013년 8월 31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she...운명이 바뀌던 순간!!*.*

..............하나님의교회
사망에서→생명으로 죄인들의 운명을 바꿔주신 안상홍 하나님 하늘어머니



운명이 뀌던





14살에 북한을 탈출해 천신만고 끝에 한국으로 온 이현서(33)씨. 그녀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이 두메산골로 쫒겨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들을 데려오기로 결심합니다. 가족들이 중국어를 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동남아시아를 거쳐 자유의 땅을 밟기까지, 3200km 이상의 거리를 자신이 직접 안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버스가 중국 경찰의 검문을 받게 되자, 그녀는 본능적으로 이들이 귀머거리에 벙어리라서 보살피고 있다고 말해 위기를 모면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은 라오스에서 체포되고 말았습니다. 감옥에서 나오게 하려면 벌금을 내야했지만 이미 많은 돈을 써버려 수중에는 한 푼도 없었습니다. 벼랑 끝에 몰린 그때, 배낭여행 중이던 호주인 딕 스톨프(68)씨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 덕분에 가족들은 극적으로 풀려날 수 있었지요.
이 씨는 경황이 없어 연락처도 물어보지 못한 채 헤어진 은인을, 한 방송국의 주선으로 4년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하염없이 눈물 흘리며 고맙다는 말만 되뇌는 그녀에게 스톨프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운명이 바뀌던 그 시간, 
그 자리에 있을 수 있었던 것이 오히려 나에겐 축복이었어요."



사망에 사슬에 있던 죄인들을 하나님나라로 옮겨주신 안상홍하나님
하나님의교회에 오신 재림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
안상홍하나님 주신 새언약의 진리로 죄 사함받고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은
하나님의교회 성도들

참 궁금하다.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의 의미와 부활절의 의미

참 궁금하다...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의 의미와 부활절의 의미



안식일의 의미와 부활절의 의미



우리나라에는 여러 가지 기념일이 있다. 일제 총칼릐 억압 속에서도 자유를 향한 불굴의 의지를 나타낸 비폭력 만세 운동을 기념하는 삼일절이 있고, 일제 강점기 35년의 압제 끝에 마침내 자유 독립을 맞이한 8월 15일을 매년 광복절로 기념하고 있다. 6월 25일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잊지 않도록 기념한다.
좀 어이 없는 질문이긴 하지만 기념일들을 서로 다른 날에 기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연히 기념하는 의미를 담은 기념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도 광복절을 6월25일에 기념하지 않고 삼일절을 8월 15일에 기념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이런 기본 상식도 없이 하나님의 뜻을 왜곡하고 거역하는 자들도 있다.

창조주의 기념일 안식일을 부인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안식 후 첫날에 부활하셨으니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안식일이 아닌 매주 첫날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무지 말도 안되는 주장이다.



예수님 세워주신 새언약 안식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님께서 세워주신 새언약 안식일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7일째 안식하신 창조주의 기념일로서 매주 일곱째 날마다 기념하는 주간절기다. 그리고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성도들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주신 날이며 매년 기념하는 연간절기다.  창조주의 기념일 안식일과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은 기념하는 의미도 다르고 기념하는 날짜도 다르며 기념하는 주기도 다르다. 그런데 안식일을 부인하는 자들은 예수님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으니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한다. 대체 왜 예수님의 부활이 창조주의 기념일 안식일을 폐지할 이유가 된단 말인가? 저들의 주장은 마치 6월 25일에 육이오 전쟁이 일어났으니 삼일절을 폐지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참 이상한 말이다.


더 이상한 것은 매주마다 부활을 기념하여 일요일에 예배를 드린다는 것이다. 매주 일요일이 부활절이란 말인가? 그렇다면 1년에 한 번씩 부활절을 왜 또 지킨단 말인가? 매주마다 기념하는 예수님의 부활과 1년에 한 번씩 기념하는 예수님의 부활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매주마다 부활을 기념한다는 주장은 일요일 예배를 옹호하기 위한 거짓되고 모순된 변명에 불과하다. 예수님의 부활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해서 매주 첫 번째 날마다 부활절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활절은 매년 다가오는 무교절 후 첫 안식후 첫날이다. 매주 일요일마다 예배를 드리라는 말씀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일요일은 로마의 태양신 숭배일에서 유래한 우상숭배의 관습일 뿐이다. 상식을 벗어난 주장까지 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부인하고 우상숭배의 관습을 옹호하는 목적이 무엇일까? 참 궁금하다.


매주 일곱째날에 창조주의 기념일, 새언약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 허락하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New"
Name
Jerusalem
Covenant
Song
Heart
Self
Heaven, Earth
이 모든 것이 허락됩니다(겔36:24~27).하나님의교회

2013년 8월 30일 금요일

eternal life 하나님의교회 book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

예수님께서 세워주신 율법 그리스도율법
하나님의교회 책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자가 갈 수 있는 천국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


고전적이며 그 내용이 방대하여 어렵게만 느껴지는 성경의 계명과 율법,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은 이 시대 인류의 구원에 없어서는 안 될 그리스도의 율법에 대하여, 모형인 모세의 율법을 통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세우신 옛 언약, 즉 모세의 율법은 장차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세우실 새 언약 그리스도의 율법을 나타냅니다.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알고 현재를 통해 미래를 알 수 있듯, 모세의 율법을 살펴보면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리스도의 보혈이 나에게 어떠한 은혜로 역사하여 어떠한 방법으로 영생을 줄 것인가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직접 교훈해주시고 가르쳐주신 생명의 '새언약', 그리스도의 율법,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의 율법>>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을 체험하고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감추어 놓으신 구원의 계획에 깨달음을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새언약의 법 그리스도의 율법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그리스도 율법을 깨닫게 하시고 지키게 해주신 안상홍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2013년 8월 29일 목요일

안상홍 하나님 오벨리스크, 태양을 훔치다..



하나님의교회 안상홍하나님;새언약유월절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오벨리스크, 태양을 훔치다


이탈리아, 프랑스, 영국, 미국, 터키 그리고 이스라엘, 이곳에는 사각 기둥 모양의 오벨리스크가 있다. 이집트의 신전을 지키고 있어야 할 것이 왜 낯선 이국땅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그것도 이국땅의 상징물인 양 말이다.

하나님의교회 [오벨리스크, 태양을 훔치다.]

이집트에 있던 오벨리스크를 처음으로 옮긴 사람은 로마의 초대 황제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다. 그것은 엄연한 약탈이었지만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죽은 상황에서 그를 막을 자는 아무도 없었다. 로마 황제가 이집트 파라오의 자리를 차지하면서 이집트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옥타비아누스는 헬리오폴리스의 태양신 라(Ra)의 신전을 지키던 오벨리스크를 굳이 로마까지 가져와 해시계의 중심 기둥으로 삼았고 이후 황제들도 조직적으로 오벨리스크를 로마로 가져갔다. 그들은 전차 경주장이나 신전 앞 광장을 이것들로 장식하는 데 열정을 쏟았다.

4세기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자리잡으면서 오벨리스크에 대한 관심은 사라지는 듯했지만, 이내 그들의 손에 이끌려 부활됐다. 로마 교황들이 고대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의 상징이자 로마 황제의 권위를 상징했던 오벨리스크를 교회 앞 광장에 세웠기 때문이다.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의미로 십자가와 성광을 오벨리스크 꼭대기에 붙인 채 말이다.

이로 인해 오벨리스크에 대한 관심은 서방 열강들로 확대됐다. 약탈한 오벨리스크를 통해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명예와 부를 함께 손아귀에 넘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런 생각은 오늘날까지도 일부 서방국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하다.

서구열강은 왜 이 비석에 집착했는가? 그것은 식민지 쟁탈에서 성공했다는 자국의 지배력을 과시하기 위한 동기에서였다. 그리고 태양신의 상징물인 만큼 승리의 영광을 나타내려는 의도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서구선교 역사에 3G시대가 있었다. 정복자의 영광(Glory), 식민지에서 수탈한 황금(Gold), 그리고 하나님(God)을 한 그릇에 담고자 했다. (2005년 4월 20일자 국민일보, ‘오벨리스크의 눈물’ 제하의 기사)

오벨리스크가 없는 메트로폴리탄 주민들은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로마에 오벨리스크가 있었고, 콘스탄티노플에도 있었다. 파리는 이미 하나 가졌고 런던도 최근에 하나 가졌다. 만약 뉴욕에 오벨리스크가 없다면 다른 모든 큰 도시들은 뉴욕을 우습게 볼 것이다. 그들은 뉴욕이 오벨리스크를 가질 때까지 결코 당당할 수 없을 것이라고 떠들어댈 것이다. (1881년자 뉴욕 헤럴드, 이집트 이스마일 총독이 미국에 오벨리스크를 선물하기 전)

현재 오벨리스크는 로마에 13개를 포함하여 이탈리아에 무려 16개가 있으며 영국에 3개, 프랑스에 2개 그리고 터키와 미국, 이스라엘에 각 1개씩 있다. 이집트에 남아 있는 수(6개)보다 훨씬 많은 수이다. 특히 오벨리스크의 약탈을 주도했던 장본인인 만큼 로마의 비율이 두드러진다. 대부분 로마 가톨릭 성당 앞에서 세워진 것들이다.

가톨릭은 오벨리스크가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얘기하지만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굳이 사라진(?) 종교의 유물을 세우면서까지 그 승리를 자축했어야 했을까. 이는 모든 종교를 포용하겠다는 가톨릭의 이념과도 맞지 않는다. 더욱이 성경에서 오벨리스크는 깨뜨려 없애야만 하는 우상이다. 하나님의 역사에서 승리란 우상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제거하는 것이다.

무리가 왕의 앞에서 바알들의 단을 훼파하였으며 왕이 또 그 단 위에 높이 달린 태양상들을 찍고 또 아세라 목상들과 아로새긴 우상들과 부어 만든 우상들을 빻아 가루를 만들어 거기 제사하던 자들의 무덤 위에 뿌리고 (역대하 34:4)

그가 또 애굽(이집트) 땅 벧세메스의 주상(柱狀)들을 깨뜨리고 애굽 신들의 집을 불사르리라 하셨다 할지니라 (예레미야 43:13)

로마 가톨릭은 하나님께서 추구했던 승리의 방식과 정반대의 방식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는 십자가와 성광을 오벨리스크 위에 세움으로써 그들의 행위를 합리화시켰다. 과연 오벨리스크는 그들의 말처럼 십자가와 성광으로 굴복시킬 수 있는 대상이었을까.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태양신 신앙을 상징하는 사각뿔 형태의 석상 ‘벤벤석’에서 유래됐다. 이집트 신화에서 벤벤은 태초의 물 누(Nu)에서 솟아오른 언덕이다. 이 위에 태양신(아침: 케프리, 낮: 라, 저녁: 아툼)이 내려와 앉았다고 해서 벤벤과 태양신을 동격으로 여겼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그 형태를 본떠 만든 벤벤석을 태초의 태양빛이 가장 먼저 닿은 장소, 성스러운 바위로 믿었다. 이후 태양광선처럼 길쭉한 사각형 기둥이 더해져 오늘날의 오벨리스크 형태를 갖추게 됐다.

이집트 후기 왕조에 이르러 벤벤석 신화는 오시리스의 남근 신화와 합쳐졌다. 태양신은 파라오를 보호하고 왕권을 상징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날수록 태양신에 대한 숭배의식은 이처럼 더욱 강화되었다. 오벨리스크는 이집트의 대표적인 태양신 숭배물이다. 그것은 태양신의 구현을 염원하는 자들의 가장 극적인 표현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태양신 상징물을 굴복시키겠다고 덧붙인 십자가와 성광은 무엇일까. 태양신을 타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십자가와 성광 역시 타파해야 할 우상에 불과하다. 십자가는 교회의 상징이 되기 전부터 태양신의 상징이었으며 방사형으로 빛을 내뿜는 태양 형상의 성광(聖光) 역시 그 자체로 태양을 의미한다. 결국 태양신 숭배물인 오벨리스크에 태양신 숭배물인 십자가와 성광을 장식한 꼴이다.

로마 가톨릭이 세운 오벨리스크, 그것은 결코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하지 않는다. 본래 이집트인들의 태양신 숭배물인 것처럼, 지금도 태양신 숭배물이다. 다만 주인이 바뀌었을 뿐이다.


하나님의교회는 새언약 진리를 추구하며 새언약유월절을 지키는 정통진리교회입니다.

2013년 8월 26일 월요일

안상홍님 저 책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and the Gospel

하나님의교회 안상홍 님 진리책자 소개


선악과와 복음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and the Gospel)


안상홍님 저 | 멜기세덱출판사 |2009

책소개
넘쳐나는 종파와 교파 속에서 과연 구원받는 믿음은 어떤 것인가?
<<선악과와 복음>>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왜 창조하셨으며 왜 범죄하게 하셨는지, 신약의 복음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이 복음을 순종하는 것인지 성경에 근거하여 명확하게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인생들이 죄 가운데서 구속함을 얻기까지 경륜을 깨달아 보시기 바랍니다.

Among many denomination and religious sects, what faith leads us to salvation?
On the basis of the Bible, the book,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 and the Gospel,"
explains clearly why God created Adam and Eve, why God let them sin, what the gospel of the new covenant is, and what is the way to be obedient to the gospel.
May you realize God's redemption work of saving humankind from their sins through this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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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짓고 이땅에 쫒겨온 죄인들에게 다시금 죄 사함의 길 허락하여 주시려 죄악의 땅 지구에 친히 오신 하늘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의교회에 계신 하늘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께 전 세계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감사의 새노래로 찬양을 올립니다.


※안상홍nim ※성경을 알았지만,,,


하나님의교회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 안상홍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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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알았지만...


성경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2천 년 전 유대인들은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안다고 자부했다. 상당 부분 그것은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그리스도를 알아봤을까. 성경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이니 당연히 그들도 예수님을 알아봐야 한다. 물론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봤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아들로'로 오셨다고 하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서 오셨다고 말씀하셨다. 그것은 마치 성부이신 여호와 하나님과는 별개의 존재처럼 여겨졌다.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가복음 14:36)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운명하시다 (누가복음 23:46)

예수님은 여호와 하나님을 전지전능한 분으로, 자신을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하는 자녀로 표현하셨다. 우리와 같은 입장이다. 여기서 의문이 들지 않는가. 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오셨다는, 전혀 문제가 될 게 없는 이 말씀을 듣고 분노했던 것일까. 더 나아가 십자가에 못박았던 것일까.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대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아버지께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너희에게 보였거늘 그중에 어떤 일로 나를 돌로 치려하느냐 유대인들이 대답하되 선한 일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다 (요한복음 10:30~33)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요한복음 5:17~18)

예수님께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신 말씀에 유대인들은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하느냐’고 대응했다. 또한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을 때 역시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긴다’고 비난했다. 하나님을 친 아버지라고 한 것을 어떻게 하나님과 동등하다고 얘기한 것으로 이해했을까.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신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이사야 6:9)

유대인들은 이사야의 예언을 알았던 것이다. BC 700년경 이사야 선지자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들로 오시겠다’고 예언하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격분했던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보다 성경을 잘 알았다.

빌립이 가로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한복음 14:8~10)

빌립은 예수님과 함께 있었지만 그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수많은 가르침을 받고서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신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스스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했던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배척해 결국 멸망을 당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고서야 깨달았던 빌립은 축복을 받았다. 무슨 차이일까. 성경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과 같다. 성경을 안다는 것은 그 말씀을 깨닫고 믿고 행하는 것이다.


하나님의교회는 하나님께 구원을 바라는 수많은 기독교인들에게 성령시대 그리스도를 전하고 있다.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증거된 남성적 형상의 성령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신부 곧 어머니 하나님을 말이다. 이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성경이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고'고 얘기한다.

필자는 성경에서 성령과 신부로 오신 그리스도를 알았다고 말하면서도 떠나가는 수많은 사람들을 보며 유대인을 떠올렸다. 그들도 알았지만 믿지 못했다.


성령과신부되신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를
새노래로 찬양하는 하나님의교회


The Spirit and the bride say, "Come!"
성령신부,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의교회

2013년 8월 25일 일요일

하나님의교회, 십자가 희생을 헛되게 하는 자들의 형벌!!!





하나님의교회는 우상숭배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십자가를 세우거나 경배하지 않습니다.


안상홍님의 가르침대로 하나님의계명을 지키는 정통진리교회 하나님의교회

십자가 희생을 헛되게 하는 자들의 형벌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은 율법에 대해 두가지 의미가 있다. 첫번째 의미는 옛 언약을 폐한 것이고 두 번째 의미는 새 언약을 세운 것이다.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니라 이 뜻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히브리서 10:9~10)

저희를 허물하여 일렀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으로 새 언약을 세우리라 ···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히브리서 8:8~13)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희생으로 폐하신 옛 언약은 모세 율법이다. 그렇다면 세우신 새 언약은 무엇일까?

저희가 나가 그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3~20)

예수님께서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유월절 떡과 포도주로 새 언약을 세우셨다(창세기 14:17~20). 그리스도의 율법인 새 언약이 세워짐으로 모세 율법인 옛 언약은 폐해졌다(고린도전서 9:20~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 언약을 고집하여 다시 세우는 것은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이다. 바울은 이러한 자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경고하였다.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에베소서 2:15~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되려 하다가 죄인으로 나타나면 그리스도께서 죄를 짓게 하는 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내가 나를 범법한 자로 만드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16~18)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0)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폐한 의문의 율법, 즉 옛 언약을 다시 세우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는 자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세우신 새 언약을 폐하는 자들은 어떻게 될까?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히브리서 10:28~29)

우리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는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으로 세우신 유월절 새 언약이다.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마태복음 26:26~28)





예수님께서 폐하신 옛 언약을 고집하는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행위며 그 결과는 저주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 세우신 새 언약 유월절을 배척하는 것 역시 예수님의 희생을 헛되게 만드는 것이다. 그 결과는 '당연히 받을 형벌'이라 하심과 같이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어머니 사랑으로 따뜻한 하나님의교회

2013년 8월 24일 토요일

하나님의교회 14년전의 계시@.@

[하나님의교회] 

}영혼{

사도들의 사상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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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히 돌아갈 천국, 하나님의교회~


우리 영혼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알려주신 영혼에 대한 지식은 인류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우치게 하고, 우리가 삶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하는지 정확하게 제시해주고 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마태복음 10;28)



하나님의교회 사도들의 사상;영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우리가 정말 두려워할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교훈과 함께 흙과 생기, 즉 육체와 영혼의 결합으로 지음받은 인간 창조의 원리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창세기 2:7). 예수님께서는 육신의 죽음과 영혼의 죽음을 구분하셨다. 다시 말해 우리에게는 육신뿐만이 아니라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구원자로 믿고 따랐던 사도들은 영혼에 대해 어떤 사상을 가지고 있었을까. 사도들의 모든 사상은 예수님의 교훈을 통해 정립되었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세워졌다. 사도들의 사상을 살펴보면 예수님께로부터 우리 인간의 영혼이 존재한다는 가르침을 받았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먼저, 바울의 사상을 살펴보자.

바울은 우리 육체가 영혼의 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집이 무너지면(육체가 죽으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고린도후서 5:1)

우리의 영혼은 현재 임시용으로 사용하는 장막집, 즉 육체 속에 살지만, 구원을 받아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영원한 집, 즉 영광스러운 부활을 입은 영혼은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이러므로 우리가 항상 담대하여 몸에 거할 때에는 주와 따로 거하는 줄을 아노니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거하는 그것이라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 (고린도후서 5:6~9)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예수님은 영의 세계에 거하시고 우리는 육의 세계에 거하고 있으니 육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예수님과 따로 거하는 것이며, 자신과 성도들의 소원은 빨리 육신을 떠나 예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라고 썼다. 이 말씀 속에서 육신에 거하는 것은 무엇이고 육신을 떠나는 존재는 무엇이겠는가. 몸을 떠나고 싶다고 한 존재는 바울의 영혼이다. 이는 그의 육체가 생명의 본질이 아니라 육체 속에 있는 영혼이 그의 본질이라는 의미다. 영혼의 존재를 확실히 깨달았던 그는 잠시 살다 떠날 육신을 위한 삶을 살지 않고 영원히 살게 될 영혼을 위한 삶을 살았다. 빌립보교회 성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빌립보서 1:21~24)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떠나서’라는 의미는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라는 말이 설명하듯이 육신에서 떠나는 것을 뜻한다. 그렇다면 육신에 거하기도 하고 육신에서 떠나기도 하는 존재는 무엇이겠는가. 바로, 바울의 영혼인 것이다. 바울의 또 다른 기록을 보자.

무익하나마 내가 부득불 자랑하노니 주의 환상과 계시를 말하리라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내가 이런 사람을 아노니(그가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느니라) (고린도후서 12:1~3)

바울은 14년 전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를 보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그의 영혼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아신다고 두 번이나 강조하였다. 이 말씀 가운데 나타난 바울의 사상은 어떠한가. 그가 만약 영혼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면 ‘몸 안에 있었는지 몸 밖에 있었는지’라는 표현을 했을 리 만무하다. 이는 바울이 계시를 볼 때, 자신의 영혼이 몸을 빠져 나와 낙원에 갔었는지, 아니면 몸과 함께 갔었는지 자신은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바울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우리에게 몸과 영혼이 존재한다고 여러 구절들을 통해 증거하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주셨던 말씀을 늘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요한복음 21:18)

베드로는 복음의 생애를 마무리하기 직전,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주셨던 말씀을 추억하면서 남아있을 성도들을 염려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베드로후서 1:13~14)

베드로는 바울과 동일하게 자신의 죽음을 가리켜 ‘장막을 벗어난다’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장막을 벗어나는 것을 가리켜 ‘자신이 떠난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베드로의 영혼이 육신을 떠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고 베드로는 수천 년 전 노아시대 죽었던 사람들의 영혼이 그때까지도 살아 있으며 옥에 갇혀 있다고 증거했다.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 (베드로전서 3:19~20)

사도 요한도 이 땅에서 순교당한 영혼들이 하늘에 있는 모습을 계시로 보았다.

다섯 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요한계시록 6:9~10)

육신의 죽음 이후에 존재하는 것은 영혼이다. 사람들은 때때로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 하고 생각하곤 한다. 나의 주인은 육체가 아니라 육체 속에 갇혀 있는 영혼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았던 사도들의 생각이었다.

사도들의 표현대로 ‘내’가, 엄밀히 말해 ‘내 영혼’이 육체라는 천막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캠핑을 가거나 야영을 할 때 천막에서 지내는 삶은 단 며칠간이다. 천막으로 비유된 육체 속에서의 삶도 마찬가지로 잠시 잠깐이다. 비록 지금은 죄로 인하여 천막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준비해두신 영원한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삶의 비중을 어디에 두고 살아가야 할지 답은 명확하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린도후서 4:18)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계를 약속으로 받은 하나님의교회 
하늘아버지 안상홍님께서 예비하신 천국
하늘어머니와 함께 가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 14년 전의 계시@.@

2013년 8월 22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선장 and son


Church of God Preaches the Glory of Elohim God
엘로힘 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교회에 사랑이신 어머니하나님께서 계십니다. 


두 신사가 항공모함에 올라탔습니다. 그중 한 신사가 선장 곁에 있는 아이를 보고 선장에게 물었습니다.
"저 아이가 당신의 아들입니까?"
"예, 제 아들입니다."
선장은 옆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그의 아들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얼마 후, 다른 신사가 선상에서 혼자 놀고 있는 선장의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얘야, 이 배의 선장님이 너의 아버지시냐?"
"아니요. 저의 아버지는 선장이 아닌데요."
선장은 옆에 있던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아이는 선장이 자신의 아버지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과연 선장과 아이는 무슨 관계일까요? 
선장은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라 바로 어머니였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보통 거센 파도에 맞서 큰 배를 운항하는 선장은 남자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사람들은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데 있어 많은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아버지 하나님 한 분뿐일 거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정관념의 위험성은 진실을 왜곡돼 보이게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갈라디아서 4:26)





고정관념을 버리고 하나님의교회에 계신 어머니를 영접하세요^^
고정관념을 버리면 죄인들을 구원하러 이 땅에 친히 오신 
하늘어머니를 알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


하나님의교회 ♥♡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하나님의교회

을 알게되면



을 알게되고



이 보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조선후기 문장가였던 유한준(1732~1811) 선생이 남긴 글이다. 이 글은 유홍준 교수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라는 책에 인용하면서 세인들의 마음에 명언으로 새겨졌다.

사랑하면 알게 된다. 가령 꽃을 사랑하면 꽃에 대해 알게 되고, 사람을 사랑하면 그 사람에 대해 알게 되듯,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런데 기성교인들은 정작 알아야 할 것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 말하고, 성경은 문자 그대로 '보는 것'에만 치중하고 있다. 아무리 성경을 열 번, 백 번 통독하며 외운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성경을 본다고 할 수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도 말할 수없다.

나는 인애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6)

하나님을 제대로 알아야 성경의 예언을 볼 수 있으며 믿을 수 있다. 이것이 유한준 선생의 글처럼 사랑하는 토대로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성경에서 증거하고 있는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자. 특히 우리가 살고 있는 성령시대의 구원자가 누군지 말이다.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 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요한계시록 3:12)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믿게 되나니, 그때 믿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하나님의교회에 계신 엘로힘하나님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4675400



엘로힘하나님되신 아버지하나님, 어머니하나님(하나님의교회)
우리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시는
성령시대 나타나신 성령과 신부되신 하늘아버지 어머니



2013년 8월 21일 수요일

안상홍 하나님 왜 믿나???



하나님의교회에서 믿고 있는 안상홍 하나님

왜 믿나?


목수 연장 나무란다는 속담이 왜 있을까? 만약 목수가 뛰어난 재주나 기술을 가졌다 해도 연장이나 도구가 없다면 일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나무를 자를 때는 톱이요, 못을 박는 데는 망치가 제격이다. 그런데 톱이나 망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할 뿐 명품톱이나 명풍망치를 소유하는 것 따위는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일요일날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근본 목적을 전혀 모르고 있거나 소홀히 여기고, 오직 수단에만 매달려  하나님보다는 남의 눈을 더 의식하고 서로 경쟁하듯 유명, 대형, 인맥, 편리성을 찾아다닌다. 더 나아가 생계, 친목, 화목, 놀이문화 등 세속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맹목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보면 마음이 참으로 답답하고 서글퍼진다. 기독교의 순수성에서 벗어나 이렇게 된 결과에 대해서는 목회자와 신도 중 누구의 책임이 더 무거울까?



안상홍 하나님과 하늘어머니를 영접한 하나님의교회


엘로힘하나님의 영광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
사랑과 감사와 행복이 넘치는 안상홍 하나님 세우신 하나님의교회

속담에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처럼 신도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주고 있는 기독교 지도층에서 악취가 날 정도로 이미 권위, 군림, 전통, 유전, 경직, 교권세습 등으로 세속화되고 썩어있으니 그 영향을 고스란히 누가 받게 될까? 이 점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없이 거짓말쟁이들과 불법자들이 반드시 책임지고 처벌받게 될 날이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참으로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으며 무조건 지도자의 권위만 믿고 따라가는 신도들의 의식도 문제가 많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미 성경적인 기준도 있고 방향도 정해져 있는데도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맹종하니 누굴 탓할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과 성경말씀을 믿고 확신하기보다는 목회자의 인격이나 학력을 믿고 의지하는 그런 낡고 병든 생각이 큰 탈이고 고질병에 난치병이고 불치병까지 진전되어 있다.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베드로전서 1:8~9)

신앙생활의 가장 큰 목적은 영혼의 구원을 받기 위한 것인데, 과연 구원의 가치나 확신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몇 퍼센트(%)나 될까? 비록 대형교회라고 하지만 오히려 세속화의 향수가 진하게 풍기고 분위기신앙 또는 맹목적인 신앙인들이 더 많고 사업상 또는 인맥적으로 각자 다른 목적 때문에 다니거나 그냥 몽유병환자처럼 생각없이 다니면서 하나님과의 친화력도 없이 양적으로 몸집 키우기에만 급급한 지도자들과 신도들의 욕심과 책임은 심판 때에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먼저는 신앙의 목적이 확실해야 하고 다음으로 방향이 올바르며 그리고 열심과 충성이요 각종 노력과 수단과 방법이 순서가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업무차 광주에 가야 할 사람이 급히 서둘러서 부산 방향으로 전력질주하고 있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확실한 목적지도 없고 방향도 모르면서 남들과 경쟁이나 벌이고 남보다 빨리 직분과 직책을 받기 위한 속도에만 관심을 갖고 열정을 다한다면 그것이 옳은 자세일까? 기가 막힌 것은 뚜렷한 목적도 없이 왜 믿는지 이해하기 참 어렵다.

성경에 뚜렷하게 나와 있는 새 언약 유월절과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눈에 쌍심지를 돋우고 부인하면서도, 성경에도 없는 주일성수와 십자가숭배 및 성탄절은 너무나 열심히 광신하는 것은 믿음의 목적이 과연 어디에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일까? 운동장에서 목표를 향하여 달리기를 할 때에 아무 방향이나 그냥 속도만 내면 될까? 안타까운 것은 목표도 없이 방향도 잘 모르고 그냥 빨리 달리는 데만 열정을 쏟는다는 거다. 얼마나 답답한 노릇인가!

적어도 기독교인으로 인정받으려면 새 언약 유월절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성화 ‘최후의 만찬’이 유월절과 어떤 관계가 있고 성경 어디에서 유래되었는지도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조건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거짓말에 미혹되어 끌려다닌다면 한심하기 짝이 없고 불쌍하기 그지없다. 고단수 사기꾼일수록 감언이설을 밥 먹듯이 잘한다는 것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부디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도 말고 슬피 울며 이를 가는 일도 없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사기 중에 가장 비참한 사기가 바로 종교사기라는 사실을 지옥에 가서 깨달으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천년전 이 땅에 오셔서 천국복음 전하신 예수님의 가르침을 그대로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교회
다시 오신 재림그리스도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르는 정통진리교회입니다.



2013년 8월 19일 월요일

안상홍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의교회에서 안상홍 하나님을 경외하라
안상홍 하나님을 경외*하는 거룩한 안식일예배
*경외해야 할 안상홍 하나님

하나님을 경외하라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개별적 주권 국가가 되었을때 리콴유 수상은 국민의 생존과 국가발전이라는 문제를 떠안게 됐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리콴유는 다양한 정책을 시도했다. 그 중 하나가 국민의 생활 곳곳에 통제와 벌금을 일상화한 것이다. 만약 누군가 길에서 침을 뱉으면 이 가벼운 경범죄에도 벌금이 10만원이나 됐다. 국민들은 설마 이 법이 시행될까 의구심을 가졌다. 하지만 리콴유는 모두의 생각을 뒤집고 이 강력한 벌금제도를 실행해 옮겼다. 결국 싱가포르는 짧은 시간 국민의 의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벌금에 대한 두려움은 무질서하던 국민을 지금의 발전적 모습으로 바꾸었다.

이 제도를 실시한 리콴유에 대한 평가는 호불호가 갈리지만 그가 추진했던 정책들로 변화도니 싱가포르를 보면서 하나님께 향하는 경외심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의 법을 어기는 인류에게 그때마다 굉장한 벌금을 내린다면 과연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경외라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엄중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 곳에 진리가 바르게 설 수 있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
안상홍 하나님께서 새언약의 법을 세워주셨습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서 12:13~14)

오늘날 지구촌에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을 보더라도 인류가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엄중하게 생각한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당부하신 말씀도 철저하게 지킬 것이다.

내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각인에게 증거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터이요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 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요한계시록 22:18~19)

하나님 말씀에서 어떤 것도 더하거나 빼지 말라 하셨다. 하지만 요즘 기성교단을 살펴보면 어떤 것도 성경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없다. 안식일은 빼버리고 일요일 예배를 더하며, 유월절은 제하고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다. 그만큼 하나님의 말씀을 우습게 여긴다는 방증이다.

만약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어긴 사람에게 매번 1억 원이라는 벌금을 내린다면 안식일을 어길 사람이 있을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매주 일곱째날은 하나님의교회에게는 특별한 날입니다.
매주 일곱째날은 창조주의 기념일인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교회는 매주 안식일 마다 안식일을 찾아주신 
하늘아버지 안상홍 님께 감사드리며 거룩하게 안식일 예배를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