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블이 사도바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레이블이 사도바울인 게시물을 표시합니다. 모든 게시물 표시

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안식일 지키면 이단이다??


안녕하세요~이웃님들^^
추운날씨에 다들 건강하시죠~
밤이 되니 더더 춥네요...겨울이니 추운게 당연하지만ㅋ
자연의 순리죠~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게~


런 자연의 순리를 우리가 바꿀 수 없는데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도 일점일획이라도 우리가 변개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식언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자들이 있어요.
그런 자들이 특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이예요.

나님의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안식일은 어떨까요?
안식일은 하나님의교회에서 만든것이 아닌 하나님의 날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거룩하고 복된 날이예요.
그런데!!! 거짓말하는 자들이 이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를
이단이라 매도하며 거짓된 말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있네요.
이런 악한자들의 훼방에 절대 흔들리면 안되겠죠.

스티브 닷컴에 실린 글을 가져왔어요.
잘 읽어 보시고 현명한 판단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되세요^^

안식일을 지키면 이단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사도행전 24:5)

위의 말씀을 기준으로 앞뒤 성경구절을 소급해서 살펴보면 당시의 권력층 유대교 지도자들이 서로 뭉치고 단합하여 사도바울을 이단의 괴수로 몰아세우면서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로마 총독에게 고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처벌하고자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한 이유는 바울이 한때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하던 열성당원으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반대편의 강적이 되어버린 데다 평범한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시민권 특혜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전염성 세균을 퍼뜨리는 염병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받은 바울도 한때는 정통유대교 소속이었다. 그는 바리새파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기 직전까지도 기독교를 심하게 잔해한 죄인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시 로마제국의 시민권 소유자인 바울을 유대 종교법으로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한양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강압적으로 조선을 통치했던 것같이 당시 유대도 로마총독의 허락없이는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을 로마법에 따른 죄명 없이는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성령의 역사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바울의 열정적인 전도와 복음의 파급효과는 엄청났기에 유대인들에게는 마치 무서운 전염병처럼 온 천하로 퍼져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처럼 틈만 나면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는 구원자다"라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에 그냥 방치했다가는 정통유대교에 치명적인 타격은 물론 유대교가 몰락할 위기감마저 느끼기에 충분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성경과 예언을 온전히 믿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직업적인 목회자들-권력세습, 교회세습, 대형화에만 혈안이 된 사명감 없는 위선자로서 생계형, 권력형, 감투와 명예를 목적으로 도에 넘치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모세 율법에 따라 오랜 세월 동안 오직 여호와를 구원자로 믿어왔던 구약 신조에서 신약시대가 열리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분명하다. 학력, IQ, 가문, 신학지식, 정통교단, 신앙경력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은 한결같이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식일밖에 몰랐다. ‘주일성수’라는 말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일요일은 안식일을 지킨 다음 날, 한 주간의 첫날일 뿐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지켰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면 이단이라며 목사들부터 앞장서서 거짓말을 하고 비난을 일삼고 있으니 답답하고 불쌍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성경 어디에서도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이단시비가 붙은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자들의 하나님의 되시는
창조주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장로교 목사, 제 무덤을 파다.-하나님의교회




장로교 목사, 제 무덤을 파다.

>>패스티브닷컴



장로교 모 목사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여 성도들이 쓰는 머리수건에 대한 오류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 내용에 따라서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권면을 말하기도 했고 또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나 권면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11장에 있는 수건 문제는 어떤가? 물론 이 문제도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먼저 밝혔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2절). 즉 이 수건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고 바울 자신이 전하여 준 유전이라는 것이다....바울의 시대에 유전 중의 하나는 서로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교회가 수건교리를 주장하려면 입맞추는(키스) 인사부터 실행한 후에 주장해야 할 것이다.>


출처: Youtube 하나님의교회 머리수건규례

머리 수건 규례가 바울의 유전이라고 주장한 모 목사의 ‘목사 자격’이 의문스럽다. 성경을 제대로 읽었으면 이런 엉터리 같은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 목사 스스로 성경의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린도전서 11:1~2)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을 본받기를 원했고 자신이 전해준 유전을 그대로 지키길 원했다. 그 유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본받은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수건 규례를 설명하기에 앞서 분명 ‘그리스도의 본’을 따른 것임을 밝혔다.

모 목사는 2절의 기록만을 ‘똑 떼어’ 마치 수건규례가 바울의 개인적인 유전인 것처럼 몰아갔지만, 1절부터 보면 ‘그리스도의 유전’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모 목사의 눈에 유독 ‘1절’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유전이란 말 자체는 ‘전통, 관습, 풍습’이란 뜻으로, 성경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람의 유전도 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그리스도의 유전도 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전했던 유전은 그리스도께 받은 그리스도의 유전이었고 그 유전을 지키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데살로니가후서 3:15)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데살로니가후서 3:6)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유전으로 안식일, 유월절, 수건규례 등을 전했다(사도행전 17:1~3, 고린도전서 5:7~8, 고린도전서 11:1~16).

그리스도의 유전(계명)에 대한 모 목사의 말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 하나님의 계명은 언제나 지켜야 할 규례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명(유전)을, 모 목사 자신은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유전을 오류라고 지적하며 이단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그의 행동은, 많은 핍박을 견디면서 그리스도의 유전을 전했던 사도 바울을 개인적인 유전이나 전하는 거짓 선지자로 몰아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는 꼴이다. 모 목사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


초대하나님의교회가 그러했듯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의 유전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사도바울이 전했던 그리스도 유전,
안식일, 유월절, 수건규례 등을 전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2013년 11월 27일 수요일

하나님의교회**개종후에*pass!!!


@패스티브닷컴.

요한계시록14장3절 예언의 주인공들
땅에서 구속함을 얻을 십사만사천은 새노래를 부를 자들
하나님의교회 식구들이 부를 새노래

을 위하여


해마다 11월에는 전국의 대학 수험생들이 수능시험을 치른다. 수험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목표한 대학교에 합격하기 위해 온 신경을 쓰게 된다. 그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고등학교 3년, 아니 중학교, 초등학교를 포함해 12년을 준비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수능시험의 결과가 앞으로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대학 입시에 큰 비중을 둔 사회풍토 때문에 정권이 바뀔 때마다 대입제도가 개편되고, 그에 따라 뒤처지지 않기 위한 학부모들의 열성으로 사교육 열풍 또한 거세게 불고 있다. 대입제도의 잦은 개편으로 사교육업체만 배불려 줬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비단 수능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인생에 있어서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시험이라고 한다면, 수험생들은 더 좋은 점수를 얻기 위해 학원을 찾아다니고, 또 합격자를 배출한 학원은 서로 앞다투어 플래카드를 내걸며 학원 자랑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만약 시험지를 받아보았을 때 족집게 학원 선생님을 통해 얻었던 정보가 그대로 반영되었다면 그 시험 결과가 어떻게 나오겠는가. 당연히 합격이지 않겠는가. 자신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만한 시험에서 정말 시험문제를 콕콕 짚어줄 수 있는 학원이 있다면,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그 기회를 놓치기 싫을 것이다. 그런데 기왕 신앙생활을 시작하기로 한 우리가 가장 큰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천국 입학시험에 직면한다고 한다면, 우리가 찾아야 할 족집게 선생님은 어느 교회에 있을까.

사도 바울. 지금의 많은 교회들이 서로 교단은 다르더라도 바울 하면 이 사람은 천국에 입성해 있을 것이라고 다들 의심없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바울은 어느 교회에 다녔길래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만큼 천국에 합격했을 거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고린도전서 1:1~3)

사도 바울이 천국에 합격하기 전에 다닌 교회는 바로 하나님의 교회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하나님의 교회를 다닌 것은 아니다.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전에 유대교에 있을 때에 행한 일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하나님의 교회를 심히 핍박하여 잔해하고 (갈라디아서 1:11~13)

사도 바울도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교회로 옮기기 전에는 유대교에 있으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고 잔해하였었다. 천국 불합격자 1순위였다. 하지만 천국 입시시험에 족집게 선생님이라 할 수 있는 예수님의 부르심으로 교회를 옮기며 개종하고 나서야 비로소 천국합격 1순위자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예수님께 무엇을 배워서 당당히 합격하게 된 것일까?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누가복음 4:16)

바울이 자기의 규례대로 저희에게로 들어가서 세 안식일에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사도행전 17:2)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누가복음 22:15~20)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식후에 또한 이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11:23~26)

바울은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시며 가르쳐주신 안식일과 유월절을 지켜 행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믿음의 길을 달려감에 따라 천국에서 면류관을 받는 큰 영광까지도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디모데후서 4:7~8)



말일에 많은 민족들이 곧 많은 이방이 하나님의교회로 몰려오고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교회에 구원자가 계시며 하나님의교회에서 구원의 은혜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교회에 계신 하늘아버지 안상홍님 하늘어머니께서 
주시는 구원의 동참하고 있는 우리들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교회@체험적인 고백☞사도바울



고상한 하나님의교회

고지식과 고상한 지식



어느 초등학생은 '고지식'의 의미를 좋게 보고 있었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보다 고등학생의 지식이 더 높듯이 고지식을 수준이 높은 지식으로 보기 때문이란다. 물론 고지식을 때묻지 않고 꾸밈이 없어서 좋다고 보는 사람도 더러 있긴 하다. 그러나 보편적으로 고지식은 부정적이고 나쁜의미로, 행위가 답답하거나 타인의 의견을 전혀 받아들일 줄 모르는 사람을 일컬을 때 흔히 쓰인다. 사전은 '성질이 외곬으로 곧아 융통성이 없다'는 뜻으로 정의하고 있다. 융통성이란 긍정적이고 좋은 의미로서 고정된 사고의 틀을 벗어나 발상의 전환을 통한 해결책 찾기의 열쇠라고 할 수 있다.

한편, ‘고상하다’는 의미를 사전에서는 ‘품위나 몸가짐이 속되지 아니하고 훌륭하다’는 뜻으로 설명하고 있다. 고상한 지식은 말 그대로 고품격의 인격을 가진, 훌륭한 사람들의 전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을 때는 예수님을 대적하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며 복음을 훼방했다. 하지만 유대교의 오랜 전통 속에서 고지식한 신앙생활을 해오던 그가 예수님이 근본 여호와 하나님과 동등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는 회개하여 생애를 바쳐 개척전도의 선구자가 되었다. 한마디로 융통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 3:7~8)

위에 기록된 말씀은 그의 진심이 담긴 체험적인 고백이며, 그가 평생 회개와 전도의 삶을 살게 된 원동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바로 고상한 지식 때문이었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님을 아는 지식이라 했다. 고상한 지식은 그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도 아깝지 않게 만들 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영적으로 고지식하면 멸망뿐이다. 고상한 지식을 접하고서도 융통성 없이 고지식하게 버틴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될까. 아무리 전통이라도 아니다 싶으면 사도 바울처럼 과감하게 돌아서야 할 것이다. 고품격의 인격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면 융통성을 가져야 한다.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난해한 머리수건 규례¿write②



'머리수건 규례는 난해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한 개신교 잡지를 보고 느낀 점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도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마태복음 13:14~15)

하나님의교회에 오신 안상홍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알아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주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아니다. 성경말씀처럼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눈과 귀를 가진 자들도 있다. 그들이 이해한 성경이란 어떤 것일까. 사도 바울‘단호하고 명확히 전한 여성도 머리수건 규례’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자.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쓰는 문제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신약성서 본문 중에서 해석하기 매우 난해한 대목에 해당한다. 안상홍증인회라는 곳에서도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써야 한다는 강령을 안식일, 세례 관련 조항과 함께 이른바 ‘기본 진리’ 항목에 포함시켜놓고 있다. 하고많은 성경의 진리들 가운데 어째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 여자 머리의 수건이란 말인가…이 관행을 절대로 틀렸다거나 망측하다고 폄하하기보다 개신교 전통에서 실천해오지 않은 이 관행을 진리의 ‘근본’ 반열로 추켜세워 드러내놓고 강조하려는 그 해석 이전의 저의가 일단 의심스러운 것이다. 즉 이 강령을 기본 진리의 실천사항으로 제시하면서 정당성이 고작 여자 머리에 쓰는 수건이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창조의 섭리”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본성”이라고 구호적 차원에서 강변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도 난해했을까. 해당 성경 구절이다.

내(바울)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없음이니라 …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고린도전서 11:1~13)

사도 바울은 예배나 기도 시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 것을, 여자는 반드시 쓸 것을 단호하고 명확하게 전했다. 전혀 난해할 것이 없다. 설사 이 단호한 음성이 그들에게 난해했다고 하더라도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여성도 머리수건 규례는 분명 그리스도께 받은 것이다.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규례를 ‘고작’이란 말로 폄하했다.

그리고 머리수건 규례를 기본 진리로 여기는 교회를 향해 그 저의(?)를 물었다.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누구한테 ‘저의를 묻고 있는지’ 대상은 알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역시나)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성경이 아닌 시대적 배경(?)에서 찾았다. 즉 유대인 사회가 여성의 공적인 노출을 절제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특수하고 극단적인 지시로 수건규례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여성도 머리수건 규례는 여성의 인권을 말살하는 나라들의 종교가 만들어낸 체계의 억압적 통치술과 같기 때문에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여기에서 생뚱 맞게 타 종교 얘기가 나온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도 바울이 여성 인권을 말살했다는 주장이 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여성 인권을 말살하는 본을 바울에게 보이셨다는 주장이 된다! 아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의분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아니하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다.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했다(고린도전서 11:11~12). 그들의 주장처럼 여성의 인권을 말살하기 위한 규례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남성도와 여성도를 평등하게 바라보셨다.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안타깝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럴 때는 말수를 줄이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라. 당할 화가 줄지도 모른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그리스도의 가르침 머리수건 규례를 행하는 초대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하나님의교회 분쟁㉾㉾사도바울의 당부 write①



[머리수건]규례....사도바울의 당부

고린도전서는 사도 중의 사도라 일컫는 바울이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첫 번째 편지다. 이 편지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성도로서 갖춰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바울과 및 현제 소스데네는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린도전서 1:2~3)

55년경 사도 바울은 이러한 인사말을 시작으로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긴 편지를 보냈다. 바울은 생애 동안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을 한 바 있는데, 이 편지를 쓴 것은 터키 남서쪽 해안에 위치한 에베소에서 3차 전도여행을 하던 중이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 간에 분쟁이 생겼다는 소식을 들은 직후로 추정된다(고린도전서 1:11)

동영상 출처: 하나님의교회 패스티브닷컴

고린도는 수년 전 2차 전도여행을 했던 곳이다. 교통수단이 변변치 않았던 당시로서는 아주 멀고도 험한 여정이었을 텐데도 결국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의 정점을 찍은 곳은 고린도였다.

당시 고린도는 그리스(헬라)의 대표적인 항구도시로 상업과 무역이 발달한 국제적 중심지였다. 반면 부도덕한 도시로도 유명했다. 이 도시에는 사랑의 여신이라 불리는 아프로디테를 숭배하는 거대한 사원이 있었는데, 이 사원에서 천 명가량의 여사제들이 매음을 행했다고 전해진다. 또, 무역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에 도시 인구는 다양한 민족들이 섞여 있었다. 따라서 다양한 이방신 숭배사상이 유입되었고, 사람들의 삶은 배금주의와 향락주의에 젖어 있었다.

고린도 하나님의교회의 구성원 역시 이방인이 대부분이었다. 이는 신앙적으로,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않은 일부 성도들로 인해 혼란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바울로서는 믿음이 약한 성도들이 퇴폐한 사회풍조와 헬라철학의 잡설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 퍽 염려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편지에는 노심초사하는 마음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1장부터 10장까지 읽어보면,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며, 음행의 죄를 꾸짖고, 결혼에 대한 교훈과 우상숭배에 대한 경고를 함으로써 거룩한 성도로서 본분을 가르치고 있다. 바울은 그 다음으로 11장에서는 강력하고 절실하게 어떤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고린도전서 11:1~3)

바울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바울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무슨 이야기를 꺼내고자 이렇게 조심스러울까. 선뜻 본론을 언급하지 못하고 고린도교회를 칭찬하며 꺼낸 이야기는 바로 다음 구절에 나타난다.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이 없음이니라 (고린도전서 11:3~5)

요약하자면 예배나 기도드릴 때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고, 여자는 머리에 수건을 쓰라는 말이다. 이 규례는 바울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다.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여성도는 머리수건을 쓰는 것, 남성도는 쓰지 않는 것. 어려운 규례가 아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반복적으로 혹은 역설적으로 여성도의 머리수건 규례를 언급하고 있다. 꼭 지켜져야 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아닌 양 치부해버릴까 염려스러웠던 것이다.

이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 많은 교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어느 교회에서도 올바로 머리수건 규례를 지키는 곳이 없다.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는 천주교도 남자인 사제가 비레타(biretta, 각진 모자), 주케토(zucchetto, 이탈리아어로 ‘작은 바가지’라는 뜻으로 둥근 모자) 등을 쓰고 있으므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에는 어긋난다.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고 축복을 받고자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예배 시 남자가 머리에 무엇을 쓰거나 여자가 머리에 수건을 쓰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 욕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바울은 역설했다.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교회 성도들에게 하고 싶었던 바울의 당부는 오직 한 가지, 거룩함을 덧입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었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