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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2월 17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안식일 지키면 이단이다??


안녕하세요~이웃님들^^
추운날씨에 다들 건강하시죠~
밤이 되니 더더 춥네요...겨울이니 추운게 당연하지만ㅋ
자연의 순리죠~여름은 덥고 겨울은 추운게~


런 자연의 순리를 우리가 바꿀 수 없는데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도 일점일획이라도 우리가 변개할 수 없는 것이죠
그런데!!! 식언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변개시키는 자들이 있어요.
그런 자들이 특징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말을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익의 재료로 삼는 자들이예요.

나님의교회에서 지키고 있는 안식일은 어떨까요?
안식일은 하나님의교회에서 만든것이 아닌 하나님의 날로서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거룩하고 복된 날이예요.
그런데!!! 거짓말하는 자들이 이 안식일을 지키는 하나님의교회를
이단이라 매도하며 거짓된 말로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있네요.
이런 악한자들의 훼방에 절대 흔들리면 안되겠죠.

스티브 닷컴에 실린 글을 가져왔어요.
잘 읽어 보시고 현명한 판단으로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되세요^^

안식일을 지키면 이단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염병이라 천하에 퍼진 유대인을 소요케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사도행전 24:5)

위의 말씀을 기준으로 앞뒤 성경구절을 소급해서 살펴보면 당시의 권력층 유대교 지도자들이 서로 뭉치고 단합하여 사도바울을 이단의 괴수로 몰아세우면서 변호사까지 선임하여 로마 총독에게 고소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바울을 처벌하고자 법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한 이유는 바울이 한때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하던 열성당원으로 활동하다가 갑자기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을 통해서 기독교로 개종한 후 반대편의 강적이 되어버린 데다 평범한 유대인이 아니라 로마제국의 시민권 특혜를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서운 전염성 세균을 퍼뜨리는 염병에 걸린 사람으로 취급받은 바울도 한때는 정통유대교 소속이었다. 그는 바리새파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학문의 경지가 높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메시아로 알아보고 복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기 직전까지도 기독교를 심하게 잔해한 죄인이었다고 스스로 고백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당시 로마제국의 시민권 소유자인 바울을 유대 종교법으로 함부로 처벌할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한양에 조선총독부를 설치하여 강압적으로 조선을 통치했던 것같이 당시 유대도 로마총독의 허락없이는 로마 시민권자였던 바울을 로마법에 따른 죄명 없이는 처벌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한편, 성령의 역사로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던 바울의 열정적인 전도와 복음의 파급효과는 엄청났기에 유대인들에게는 마치 무서운 전염병처럼 온 천하로 퍼져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는 속담처럼 틈만 나면 "예수는 그리스도다", "예수는 구원자다"라는 메시지를 전했기 때문에 그냥 방치했다가는 정통유대교에 치명적인 타격은 물론 유대교가 몰락할 위기감마저 느끼기에 충분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성경과 예언을 온전히 믿었던 것이 아니라 오늘날 직업적인 목회자들-권력세습, 교회세습, 대형화에만 혈안이 된 사명감 없는 위선자로서 생계형, 권력형, 감투와 명예를 목적으로 도에 넘치는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과 같은 사람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모세 율법에 따라 오랜 세월 동안 오직 여호와를 구원자로 믿어왔던 구약 신조에서 신약시대가 열리면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총이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 분명하다. 학력, IQ, 가문, 신학지식, 정통교단, 신앙경력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행한다면 그가 바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다.

사도 바울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은 한결같이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안식일밖에 몰랐다. ‘주일성수’라는 말은 살아생전 단 한 번도 언급한 적이 없었고, 일요일은 안식일을 지킨 다음 날, 한 주간의 첫날일 뿐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안식일을 지켰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오히려 안식일을 지키면 이단이라며 목사들부터 앞장서서 거짓말을 하고 비난을 일삼고 있으니 답답하고 불쌍하고 안타깝기만 하다. 성경 어디에서도 안식일을 지킨다는 이유로 이단시비가 붙은 장면은 찾아볼 수 없다.



하나님의교회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는 자들의 하나님의 되시는
창조주 안상홍님과 하늘어머니

2013년 12월 16일 월요일

장로교 목사, 제 무덤을 파다.-하나님의교회




장로교 목사, 제 무덤을 파다.

>>패스티브닷컴



장로교 모 목사는 하나님의교회에서 여 성도들이 쓰는 머리수건에 대한 오류를 이렇게 설명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기록할 때 내용에 따라서 자신의 개인적인 의견이나 권면을 말하기도 했고 또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계명이나 권면을 말하기도 했다.  그러면 11장에 있는 수건 문제는 어떤가? 물론 이 문제도 꼭 지켜야 할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유전이라고 먼저 밝혔다.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 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2절). 즉 이 수건 문제는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고 바울 자신이 전하여 준 유전이라는 것이다....바울의 시대에 유전 중의 하나는 서로 입맞춤으로 인사하는 것이었다. ...하나님의교회가 수건교리를 주장하려면 입맞추는(키스) 인사부터 실행한 후에 주장해야 할 것이다.>


출처: Youtube 하나님의교회 머리수건규례

머리 수건 규례가 바울의 유전이라고 주장한 모 목사의 ‘목사 자격’이 의문스럽다. 성경을 제대로 읽었으면 이런 엉터리 같은 주장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 목사 스스로 성경의 무지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다음 구절에서 자명하게 드러난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너희가 모든 일에 나를 기억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전하여 준대로 그 유전을 너희가 지키므로 너희를 칭찬하노라 (고린도전서 11:1~2)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을 본받기를 원했고 자신이 전해준 유전을 그대로 지키길 원했다. 그 유전은 다름 아닌 ‘그리스도’로부터 본받은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수건 규례를 설명하기에 앞서 분명 ‘그리스도의 본’을 따른 것임을 밝혔다.

모 목사는 2절의 기록만을 ‘똑 떼어’ 마치 수건규례가 바울의 개인적인 유전인 것처럼 몰아갔지만, 1절부터 보면 ‘그리스도의 유전’이라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왜, 모 목사의 눈에 유독 ‘1절’만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유전이란 말 자체는 ‘전통, 관습, 풍습’이란 뜻으로, 성경에는 사람들이 만들어낸 사람의 유전도 있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인 그리스도의 유전도 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전했던 유전은 그리스도께 받은 그리스도의 유전이었고 그 유전을 지키라고 당부했던 것이다.

이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데살로니가후서 3:15)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데살로니가후서 3:6)

데살로니가후서를 기록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유전으로 안식일, 유월절, 수건규례 등을 전했다(사도행전 17:1~3, 고린도전서 5:7~8, 고린도전서 11:1~16).

그리스도의 유전(계명)에 대한 모 목사의 말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도 변할 수 없는 것이다. ··· 하나님의 계명은 언제나 지켜야 할 규례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어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하나님의 계명(유전)을, 모 목사 자신은 지키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유전을 오류라고 지적하며 이단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있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 그의 행동은, 많은 핍박을 견디면서 그리스도의 유전을 전했던 사도 바울을 개인적인 유전이나 전하는 거짓 선지자로 몰아가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부정하고 있는 꼴이다. 모 목사 스스로 제 무덤을 팠다.


초대하나님의교회가 그러했듯
지금 이 시대에도 그리스도의 유전을 전하는 하나님의교회는 
사도바울이 전했던 그리스도 유전,
안식일, 유월절, 수건규례 등을 전하며 지키고 있습니다.


2013년 10월 31일 목요일

하나님의교회 偶像우상 십㉶㉮가 없어요??


[패스티브닷컴]하나님의교회

우상이란?


이미지출처:패스티브닷컴

우상의 사전적 의미는 '나무, 돌, 쇠붙이, 흙 따위로 만들어 신처럼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상이냐 아니냐는 대상에 신앙적 의미를 부여하고 있느냐, 아니냐가 관건이다. '우상(偶像)'이라는 단어의 '상(像)'은 사람들이 마음에 그려지는 사물의 형체를 조각으로 나타내는 것을 일컫는다. 여기에는 공원이나 유원지 등지에 세워 놓은 상질물이나 기념을 위해 세워 놓은 동상, 예술작품인 조각상, 위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한 각종 상들이 있다. 그렇다면 이런 모든 것이 우상이 될까. 성경에서 알려주고 있는 우상의 기준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여호와께서 호렙산 화염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두렵건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되 남자의 형상이라든지, 여자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있는 아무 짐승의 형상이라든지, 하늘에 나는 아무 새의 형상이라든지, 땅 위에 기는 아무 곤충의 형상이라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아무 어족의 형상이라든지 만들까 하노라 또 두렵건대 네가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어 일월 성신 하늘 위의 군중 곧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천하 만민을 위하여 분정하신 것을 보고 미혹하여 그것에 경배하며 섬길까 하노라 (신명기 4:15~19)」

성경에서는 ‘아무 형상이든지 세워서 경배하는 것’이 우상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저 세웠다고 모두가 우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이든 ‘섬김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우상이다. 도시를 대표하거나 지역을 상징하는 상징물들은 이것을 대상으로 신앙적 행위를 하지 않으므로 우상이 아니다. 하지만 십자가나 마리아상 등과 같은 것은 그 앞에서 기도하고 절하는 등 신앙적 행위를 하므로 우상이 된다. 이는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등장하는 느부갓네살 왕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느부갓네살 왕이 금으로 신상을 만들었으니 고는 육십 규빗이요 광은 여섯 규빗이라 그것을 바벨론 도의 두라 평지에 세웠더라 ··· 너희는 나팔과 피리와 수금과 삼현금과 양금과 생황과 및 모든 악기 소리를 들을 때에 엎드리어 느부갓네살 왕의 세운 금신상에게 절하라 누구든지 엎드리어 절하지 아니하는 자는 즉시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하매 (다니엘 3:1~6)」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을 만들기만 했어도 이는 우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모든 백성으로 그 앞에서 경배를 하게 만들고 자신들의 바라는 것을 빌게 했다. 결국 금신상은 우상이 되고 말았다. 즉 ‘어떤 형상이든지 세우지 말라’는 말씀만으로 우상의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형상이든지 세우지 말라’는 하나님의 뜻을 간파해야 한다.

종교개혁자 장 칼뱅은 그의 저서 ‘기독교강요 1권 1부 11장 9항’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가시적인 형상을 만들자마자 하나님의 권능이 그 형상에 부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형상화 작업이 끝나면 그 형상에 예배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우상만을 예배하든지 하나님을 우상으로 예배하든지 모두 죄다.”

주위에 있는 형상들을 살펴보자. 이순신 장군상이나 독립투사 유관순 기념상 앞에서 과연 하나님을 경배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 동상들이 어떤 권능을 행한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그 형상들 속에 신심을 부여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은 그것들이 우상이 아니라는 결과다. 하지만 칼뱅의 말처럼 십자가나 마리아상 등 종교적 형태로 제작된 상들은 다르다.

“우상을 바라보면서 그와 같이 기도하여 예배하는 사람치고 그 우상이 자기의 기도와 예배를 받아주리라는 생각과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주리라는 희망을 품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다.” (기독교강요 1권 1부 11장 10항)



우상의 판단 기준이 바로 이것이다. 과연 어떤 형상에든 신심을 부여하고 있느냐가 핵심이다. 이와 더불어 우상이냐 아니냐를 판단하는 것은 신앙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우상을 섬기는 여부에 따라 그 결과가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출애굽기 20:4~6)」

우상을 세우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과연 어떤 것이 우상이며, 더 나아가 자신이 우상을 섬기는지의 여부를 성경을 통해 잘 판단해보길 바란다.

우상인 십자가를 세우지 않는 하나님의교회

2013년 10월 15일 화요일

하나님의교회 난해한 머리수건 규례¿write②



'머리수건 규례는 난해해'


역시 하나님의 말씀은 한 치의 오차도 없다. 한 개신교 잡지를 보고 느낀 점이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도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마태복음 13:14~15)

하나님의교회에 오신 안상홍님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알아볼 수 있고 깨달을 수 있는 눈과 귀를 주셨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에게 주신 것은 아니다. 성경말씀처럼 보고도 알지 못하고, 듣고도 깨닫지 못하는 눈과 귀를 가진 자들도 있다. 그들이 이해한 성경이란 어떤 것일까. 사도 바울‘단호하고 명확히 전한 여성도 머리수건 규례’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는지 보자.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쓰는 문제에 대한 바울의 언급은 신약성서 본문 중에서 해석하기 매우 난해한 대목에 해당한다. 안상홍증인회라는 곳에서도 여자가 머리에 너울을 써야 한다는 강령을 안식일, 세례 관련 조항과 함께 이른바 ‘기본 진리’ 항목에 포함시켜놓고 있다. 하고많은 성경의 진리들 가운데 어째서 가장 ‘근본적인’ 가르침이 여자 머리의 수건이란 말인가…이 관행을 절대로 틀렸다거나 망측하다고 폄하하기보다 개신교 전통에서 실천해오지 않은 이 관행을 진리의 ‘근본’ 반열로 추켜세워 드러내놓고 강조하려는 그 해석 이전의 저의가 일단 의심스러운 것이다. 즉 이 강령을 기본 진리의 실천사항으로 제시하면서 정당성이 고작 여자 머리에 쓰는 수건이 “그리스도의 명령”이며 “창조의 섭리”이며 “하나님께서 주신 본성”이라고 구호적 차원에서 강변되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렇게도 난해했을까. 해당 성경 구절이다.

내(바울)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무릇 남자로서 머리에 무엇을 쓰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요 무릇 여자로서 머리에 쓴 것을 벗고 기도나 예언을 하는 자는 그 머리를 욕되게 하는 것이니 이는 머리 민 것과 다름없음이니라 … 너희는 스스로 판단하라 여자가 쓰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하냐 (고린도전서 11:1~13)

사도 바울은 예배나 기도 시 남자는 머리에 아무것도 쓰지 말 것을, 여자는 반드시 쓸 것을 단호하고 명확하게 전했다. 전혀 난해할 것이 없다. 설사 이 단호한 음성이 그들에게 난해했다고 하더라도 사도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여성도 머리수건 규례는 분명 그리스도께 받은 것이다.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규례를 ‘고작’이란 말로 폄하했다.

그리고 머리수건 규례를 기본 진리로 여기는 교회를 향해 그 저의(?)를 물었다. 머리수건 규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다. 누구한테 ‘저의를 묻고 있는지’ 대상은 알고 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역시나) 여성도가 머리수건을 쓰지 않아도 된다는 논리를 성경이 아닌 시대적 배경(?)에서 찾았다. 즉 유대인 사회가 여성의 공적인 노출을 절제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특수하고 극단적인 지시로 수건규례를 내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여성도 머리수건 규례는 여성의 인권을 말살하는 나라들의 종교가 만들어낸 체계의 억압적 통치술과 같기 때문에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왜 여기에서 생뚱 맞게 타 종교 얘기가 나온 것인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사도 바울이 여성 인권을 말살했다는 주장이 된다. 더 나아가 그리스도께서 여성 인권을 말살하는 본을 바울에게 보이셨다는 주장이 된다! 아아,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의분이 나지 않을 수 없다.

성경은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아니하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다.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으나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났다"고 했다(고린도전서 11:11~12). 그들의 주장처럼 여성의 인권을 말살하기 위한 규례가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남성도와 여성도를 평등하게 바라보셨다.

눈이 있고, 귀가 있으면 무엇하겠는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니 안타깝고 안타깝기만 하다. 그럴 때는 말수를 줄이는 것이 차라리 나으리라. 당할 화가 줄지도 모른다.


출처 : 패스티브닷컴
그리스도의 가르침 머리수건 규례를 행하는 초대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2013년 9월 27일 금요일

안상홍ⓝⓘⓜ 믿는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하는 Baptism

하나님의교회에서 행하는 침례에 대해

잃어버린 자녀 생명 주시기 위해 6000년을 
기다리신 어머니....
하나님의교회에서 침례를 통해 구원의 표를 주십니다.



죄사함, 영생, 구원의 첫걸음이 침례입니다.


침례, 3개월 공부하고 받으라고?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침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베드로전서3:21)

침례(세례)는 구원의 표다. 따라서 아무리 오랫동안 하나님을 믿었다고 하더라도 침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 이처럼 중요한 침례, 도대체 언제 받아야 할까? 3개월 또는 6개월 동안 성경 학습을 한 후 받아야 할까, 아니면 하나님을 깨달은 즉시 받아야 할까? 선지자의 사례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살펴보자.

에디오피아 여왕의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 이사야서를 읽고 있었다. 그때 빌립이 성령의 이끌림에 따라 마차에 다가가 “읽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고관이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라며 빌립에게 마차에 오르길 권했다. 마차에 오른 빌립은 그에게 이사야서부터 시작하여 예수님에 관한 복음을 전했다. 진리를 깨달은 고관은 물 있는 곳에 이르렀을 때 “여기 물이 있는데 나도 침례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그리고 빌립과 고관은 물가로 내려가 침례식을 행했다. 진리를 깨달은 그 즉시(사도행전 8:27~38).

바울과 실라가 복음을 전하다 옥에 갇혔다. 그 밤중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 옥문이 열렸다. 간수가 자다가 깨 옥문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가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자살하려 하자 바울이 이를 말렸다. 간수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려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바울과 실라가 “주 예수를 믿으십시오, 그러면 당신과 온 집이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날 밤 간수가 바울과 실라를 그의 집으로 데려가 매맞은 상처를 씻어주고 온 집안 식구와 함께 즉시 침례를 받았다(사도행전 16:25~33).

위의 두 사례를 통해 복음을 깨달은 ‘즉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침례가 중대하고 긴급한 의식이기 때문이다. 성경 어디에도 3개월이나 6개월 동안 학습한 후 침례를 받으라는 말씀은 없다. 하나님의교회가 침례를 먼저 준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모르고 하는 주장일 뿐이다.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우리 인생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깨달은 즉시 침례를 받아 구원을 받으라고 하신 것이다(잠언 27:1).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동영상출처 : 하나님의교회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침례를 행하는 하나님의교회